6.25당시 김소월의 시 "진달래"의 고향인 영변의 약산을 바라보며 북한의 인민학교를 다니던 9살의 시골 소년이 1951년 1.4후퇴라는
전쟁의 참상을 겪으며 부모님을 따라 타박타박 걸어서 무작정 남쪽으로의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황해도 연백평야에서는 피난민으로 가장한 중공군으로 오인한 유엔군 전투기들의 무차별 기종소사를 받아 많은 피난민들이
희생되는 것을 보며 꽁꽁 얼어 붙은 임진강의 "쩡 쩡"소리나는 얼음 위를 건너서 남쪽으로 피난길을 재촉했읍니다.

 

서울의 친척들을 찾아 해방촌에 이르렀을 때는 모두 남쪽으로 피난을 떠난 후였고,
한강다리는 끊겼고 다행히도 부교가 놓여 있었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울렁거리는 부교를 부모님 손에 이끌려 건너서, 노량진 역에서 탱크를 싣고 후되하는 화차의 탱크 바퀴밑에 엎드려,
며칠인지를 모를 여러날을 결려 부산에 도착하였습니다.

 

고마움을 모르고 그 다리를 무사히 건너 생명을 구한 그 소년이 군인으로서, 교육자로서, 과학자로서 사회봉사의 활동을 마쳐가며
이제 67살의 초로의 인생길에 들어서 가슴저리는 감사의 마음을 전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58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사회각계각층에서 활동하고 있을 수십만 피난민을 대신해서
미 공병부대의 노고와 희생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이런 자리는 한미친선군인협의회에 의해서 마련되었습니다.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